타카긴? 즈라긴? 확실한 건 타카스기 중심에 긴토키와 가츠라가 나온다.
※네타주의※
원래 쓰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역시 썰은 썰로 끝나야지 살이 붙으면 안돼. 내가 붙이는 살은 살이 아니라 지방덩어리 셀룰라이트다.
으으 젱장 오랜만에 쓴 글이아 초토화구나 아주.
읽으실시 손발 책임 지지 않습니다. 민망하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 업로드하는 나란 닝겐. 다메다!!
유치해 질땐 확 유치해질 수 있도록. 나도 글 잘 쓰고 싶다 힝. 왜 갈수록 퇴화하냐. 안 쓴다고 반항하는 거냐 지금.
으아 안되겠다. 졸려서 내가 뭐라고 쓰는 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올리고 보자ㅏㅏ
타카스기가 눈을 어떻게 했을까?로 시작된 썰이... 이도저도 아닌 똥이 되었다.
개연성이고 현실성이고 뭐고 저리 다 꺼져. 실제 의안이 동그랗지 않은서 충격. 하지만 구린 시대니까 구린 의학기술이니까 동그란 의안으로.
히히. 읽으면서 와 읽고 나서의 민망함과 유치함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끝으로 갈 수록 원래 썰에 없던거랔ㅋㅋㅋㅋㅋㅋ으앜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자꾸 귀병대가 귓병대로 자동변환 되는 거요? 귓병대가 뭔데. 워드 퍼킹. 퍼킹 패션퍼머.
1.
보이지도 않는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끝 없는 암흑뿐이었지만 지옥의 나락구덩이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2.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몸에서 열이 펄펄 끓고 있는 후였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차라리 같이 잃어버렸으면 어땠을까 싶은 오른쪽 눈을 간신히 떴다. 뿌연 망막에 보이는 흐릿한 시야로 보건대 부상자들을 간호하는 곳이었다. 며칠째 똑같은 천장과 똑같은 벽, 같은 자리였다. 목이 타고 괴로운 갈증이 일었지만 물을 마실 의사는 없었다. 대충 짐작이 가는 높은 온도였다. 그로 인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한 고통이 찾아온다 한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다할 이유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는 죄인이었다. 죽어도 속이 시원치 않을, 죽어서라도 욕을 보이고픈 죄인이었다.
반쯤 눈을 뜬 그를 다른 이들이 발견했다. 타카스기씨 정신이 드십니까?!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를 정확히 식별하기는 어려웠다. 고열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까지도 모호하게 만들었다. 마치 홀로 물 속에 잠겨서 물 위의 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닥쳐. 입술은 달싹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입 안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타카스기는 바로 말을 할 의사를 잃었다. 말을 한다고 해서 무얼 하나 싶었다. 흐릿한 시야 속의 그 치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저들끼리 큰 소음을 만들며 바빴다. 귀를 괴롭히는 소음 속에서 홀로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나쁘지 않았다. 이제와 혼자인들 혼자가 아닌들 중요하지 않았다. 의지가 사라져갔다. 영혼이 사라져갔다. 눈이 다시 감기려 하고 있었다. 차라리 잠드는 편이 더 편할지도 몰랐다. 이딴 엿 같은 현실이 아니라 꿈 속에서라면. 거기서라면 편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백야차다.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타카스기는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들었다. 득 될게 없는, 저를 해치는 독이 분명함에도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 꺼져가려던 의식이 점차 깨어났다. 아까 뜰 때보다도 몇 배는 더 힘든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하지마, 하지마. 어딘 가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싫어 뜨지마. 보지마. ㅡ너…는ㅡ.
시야는 뿌옇지 않았다. 시야가 뿌옇지 않은 건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인지 하얀 실 뭉텅이 같은 것이 눈 앞에 보였다.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더운 숨이 입술을 넘어 뱉어졌다. 긴토키였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 백발은 긴토키가 분명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가 손을 들었다. 하얀 손이 시야를 벗어나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타카스기는 보다 더 뜨겁게 뎁혀진 몸 때문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이내 이마에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뜨거운 열을 가로지르는 시린 냉기에 피부가 떨렸다. 치가 떨렸다. 맹렬히 솟구치는, 말을 하고 싶은 욕구에 타카스기는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몸은 힘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워만 있은 지 열흘 째였다. 제 아무리 제일 좋은 식량을 그에게 먼저 할당할지언정 본인이 먹기를 거부했다. 제일 기본적인 수분조차도 제대로 섭취하지 않은 타카스기였다.
3.
망가진 안구는 ‘그 날’ 저녁에 뽑아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셋은 본지로 돌아와다. 잡혀갔던 저희를 걱정했던 동료들이 부리나케 뛰쳐나와 맞아주었다. 너희를 구하러 백야차가 적진에 홀로 찾아갔다는 둥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둥의 잡음이 너무나도 시끄럽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타카스기는 즉시 제 망가진 왼 눈에 다시 칼을 박아 넣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경악하였다. 아니 그 ‘모든 이’에는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였다. 맨발로 뛰쳐나와 그를 말리던 다른 이들과 달리 두 명은 가만히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다른 그 둘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불로 지진 듯 화끈거리는 고통이 익숙해질 즈음 칼을 빼 들었다. 제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배경 삼아 칼 끝을 바라보았으나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혀를 찰 시간도 아까웠다. 다시 칼을 박아 넣으려는 찰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리던 이들이 타카스기를 저지했다. 대신 새로운 칼이 날아와 눈에 박혔다. 조금은 놀란 감정이 비쳐졌을 타카스기의 얼굴로 긴토키가 칼을 꽂았다. 스승을 벤 그 칼이었다. 날에는 아직도 스승의 혈(血)이 남아있었다. 스승을 베기 위해 자세를 취하던 긴토키의 하얀 뒷모습, 날아가던 장발의 두상, 쓰러지는 스승의 목 없는 전신, 뿜어 나오는 혈(血). 그리고 왼 눈에 박힌 마지막의ㅡ.
타카스기는 긴토키와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핏 보이는 그의 얼굴은 사자(死者)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서로를 직시할 수 없는 죄인들. 시원하게 뽑혀 나간 긴토키의 칼 끝에는 여러 번의 의도적인 난도질 끝에 뭉개진 안구가 박혀 있었다. 비어버린 왼쪽의 구멍으로 공기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줄줄 흘러 넘치는 피가 깃을 적시고 가슴을 적셨다. 눈물 따위로는 비할 것이 못됐다. 피의 강이, 거기서 흐르고 있었다. 엄청난 출혈과 경악하는 동료들의 부르짖음 속에서도 타카스기는 오직 긴토키만을 바라봤다. 하나 남은 오른 눈만으로도 하얀 그를 담기에는 충분했다. 떨쳐내듯 칼을 휘둘러 박힌 안구를 빼낸 긴토키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칼을 집어 넣었다. 지혈할 거를 가져오라는 둥, 깨끗한 물을 가져오라는 둥의 소음 속에서 문드러진 안구가 땅에 내동댕이쳐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철퍽.
이후로 타카스기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4.
4일을 꼬박 앓고 5일째 되던 날에서야 타카스기는 의식을 되찾았다. 의식을 찾고 눈을 뜬 감상은 절망스러웠다. 실망스러움이 온 몸을 휘감는 가운데에 죽기를 바라는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워야 할 머릿속은 단 한가지만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철퍽. 철퍽. 철퍽. 돼먹지 못한 소리가 잠잠해지면 우는 야차의 얼굴이 보였다. 그걸 몇 번이고 수 천 번, 수 만 번 되풀이 할 때쯤 긴토키가 찾아왔다. 온 몸에 흥건히 피를 뒤집어 쓴 채였다. ‘그 날’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던 그였다. 스승이 목숨을 잃었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저가 쓰러진 이후, 그 개인의 심경과는 상관 없이 전장에 나가야만 했던 긴토키와 가츠라의 모습이 쉬이 그려졌다. 녀석은 오늘도 생(生)을 베고 왔다. 베고 온 생(生)의 흔적은 온몸에 새기며 제 앞에 나타났다.
긴토키는 뚝뚝 떨어지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간호를 담당하던 이들이 말렸지만 아무 말도 않고 무표정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가쁘게 숨을 내쉬는 타카스기를 앞에 두고 긴토키는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승을 베기 위해 나타난 얼굴 그대로였다. 함부로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랬다. 타카스기는 그 꼴이 보기 싫어 눈을 감았다.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누워있는 병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긴토키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 자리를 지키던 손이 들려 속이 텅 빈 왼 눈으로 향했다. 여전히 베어 나오는 피로 흠뻑 젖어있는 천이었다. 아직까지도 온기를 잃지 않은 시뻘건 피로 범벅이 된 손이 닿는다고 티도 나지 않았다. 타카스기는 비어버린 눈 위로 느껴지는 무게감을 느끼며 아까 본 그를 떠올렸다. 피 칠갑을 한 야차의 손은 더러웠다. 스승을 친 손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타락해있었다.
곧 손이 거둬졌다. 긴토키는 그저 타카스기의 옆에서 앉아 그를 보다가 나가버렸다. 천을 갈아야 한다며 다가온 담당이 놀라서 말했다. 이 흥건한 핏자국은 뭐야?! 긴토키가 앉아있던 자리였다. 타카스기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말 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필히 긴토키 그도 그랬을 것이었다. 그의 심중을 알 길이 없으나 피차 할 말이 없긴 마찬가지였으리라. 어쩐지 하나 남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어금니를 세게 물었다. 목에서 핏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은 비릿함이 느껴졌다.
이후로 한번도 빼먹지 않고 긴토키는 매일 타카스기를 찾아왔다.
5.
그 첫날과 다음날을 제외한 나머지 날은 과격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식음을 거부하는 타카스기를 긴토키가 강제로 입을 벌려 먹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리는 동료들의 반대에도 꿋꿋이 긴토키는 어거지로 그의 입을 벌리고 죽과 물을 집어넣었다. 하도 잡아 벌려서 턱이 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혀 때문에 말도 못하고 타카스기는 그 우악스러운 손길을 전부 받아냈다. 다만 마냥 우악스럽기만 한 것이 아닌 게 불만이었다. 너는, 나를 그렇게 대할 자격이 있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입 밖으로 꼭 내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약은 꾸준히 먹고 있었다. 식음만 전폐했을 뿐이었지만 강제로 먹여지는 통이었다. 미약하게나마 나날이 좋아지는 상태는 분명 객관적으로 봐도 그의 몫이 컸다.
그렇게 온통 옷과 이불 위에 죽이 흩뿌려진 난장판을 만들고 나면, 긴토키는 그저 가만히 옆에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가버렸다. 한 번에 떠넘기기 힘든 음식물의 투입으로 부족했던 산소를 채우기 위해 흉부가 열심히 상하 운동을 하고 있노라면 타카스기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의 옆에 있는 기척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뿐이었다. 타카스기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어쩌고 싶은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어떻게 하고 싶은 지 저 자신 또한 알 길이 없었다. 닫힌 눈 꺼풀에 보이는 거라곤 끝 없는 암흑뿐이었다.
답을 알 것만 같은 이는 이미 세상에 없는 뒤였다.
오늘도 그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오늘은 전장에 나가지 않았는지 평상복 차림이었다. 흰색의 옷은 그를 망령 같아 보이도록 만들었다. 타카스기는 그가 실제로 망령이 아닐까 생각했다.
손수 먹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긴토키는 올 때마다 타카스기를 간병했다. 붕대를 갈아주기도 하고 천을 갈아주기도 하고 피를 닦아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타카스기는 조용히 있었다. 의식이 깨어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분노가 피어 오르는데도 차분한 것처럼, 죄의식이 저를 수장시키는데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타카스기씨 왼쪽이 점점 함몰되어가고 있어요. 의안을 넣어야지만 함몰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의무병에게 큰소리를 치고 싶었다. 그런 거라면 네 녀석이 하면 되지 않느냐고 멱살을 잡고 싶었다. 왜 저 녀석이 그 짓거리를 하는 거냐고 호통을 치고 싶었다. 붉은 눈은 여전히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타카스기는 어쩐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여태 피해왔던 그 붉은 눈을 바라보았으나, 한번도 그 쪽에서 마주해오는 일은 없었다. 두 개의 눈동자를 하나에 다 담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두 번째로 갈아줬던 찬 수건을 가져간 이마가 얼얼했다. 의무병의 지시 하에 모든 건 긴토키가 직접 했다. 타카스기는 그저 하나뿐인 눈으로 그걸 바라볼 뿐이었다. 흰 손이 시야를 벗어나 수건의 냉기로 물기가 어린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리는 게 느껴졌다. 옆에 앉아있던 긴토키가 타카스기의 머리 쪽으로 다가왔다. 무심하고도 무심한 얼굴이었다. 텅 비어 보이는 것이 꼭 텅 빈 제 왼 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 눈을 덮고 있던 소독된 천을 치우고, 눈을 떠보라는 의무병의 말에 써 본지 오래되어 감각이 둔해진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감추는 것 없이, 실낱 하나 없는 그대로의 왼 눈이 붉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그렇게 묻고 싶었다. 고작 천 하나 없는 거뿐인데 벌거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낱낱이 그 무표정 앞에 모든 걸 드러내 놓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비어버린 왼 눈은 치부였다. 그에게 어떻게 보일 지 두려웠다. 공상 속의 저는 주저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긴토키가 있었다. 너… 너는…! 울면서 소리치는 그의 앞에서 긴토키는 담담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긴토키! 이제는 피눈물을 흘리는 제가 있었다.
너는 어쩌고 싶은 거야? 긴토키.
묻고 싶은 건은 단지 그거 하나뿐이었다.
6.
왼 눈을 벌려 의안을 집어 넣으려던 그 손을 내쳐버렸다. 잠깐 움직인 것만으로도 상당히 진이 빠졌다. 무표정만을 일관하던 맹한 얼굴이 조금 놀란 기색을 띠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기뻤다. 의무병이 제 이름을 부르며 의문을 표했다. 타카스기는 손을 들어올려 왼 눈을 가렸다. …요 없어. 필요 없어.
누르면 안 된다고 호들갑을 떨며 손을 치우려는 의무병이 귀찮았다. 안돼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힘을 가하면 함몰이 심해집니다! 타카스기씨! 손을 치워주세요!! 다급하게 소리치는 그 목소리에 골이 흔들려서 힘이 좀 빠졌다. 의무병이 겨우겨우 타카스기의 손을 내리고 긴토키가 담담하게 다시 의안을 집어넣기 위해 눈꺼풀 사이를 벌렸다.
"저리 치워!"
순간적으로 발휘 된 힘은 셌다. 손에서 놓친 것인지 무언가가 도르르 바닥을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타카스기씨 원치 않으셔도 해야만 합니다! 의무병은 쫑알쫑알거리는 것이 시끄럽고 거슬렸다. 하지만 보다 더 거슬리고 치워버리고 싶은 것은 죽마고우 쪽이었다. 머리 맡에서 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바닥을 구른 의안을 물로 헹구는 것이었다. 긴토키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의안을 넣으려고 시도했다. 타카스기는 이가 갈렸다. 이런 식의 대화는 원치 않았다.
"…내버, 려 둬!"
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비어버려서 후련함이 가득한 왼 눈을 다시 채워 넣는 것도, 그걸 하는 게 긴토키 녀석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안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냥 썩어 문드러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싶다고. 함몰되어가는 얼굴의 반쪽을 보며 ‘그 날’을, 스승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고. 우는 너의 얼굴도 비통에 찬 즈라의 얼굴도 그리고 나약하고 무력하던 스스로의 어리석음도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긴토키가 타카스기의 위를 점했다. 저를 타고 있는 긴토키를, 타카스기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전히 무심한 얼굴과 여전히 저를 직시하지 않는 붉은 눈이 보이는가 싶더니 주먹이 날라왔다. 의무병이 비명을 지르며 긴토키를 말리려고 했지만 긴토키는 그를 내동댕이치고 신나게 더 날렸다. 언뜻 보이는 주먹 사이로 일그러지는 듯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점차 일그러져가는 표정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도 보이는 그 얼굴이 더 망가졌으면 싶었다. 주먹이 오가는 사이, 그의 얼굴이 보이는 짧은 찰나의 시간마다 타카스기는 긴토키의 붉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죽은 눈이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죽은 눈이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타카스기를 담았다. 피처럼 붉게 일렁이는 죽은 눈 속에서 생명력이 느껴지는 게 모순이었다. 입술이 터져서 피 맛이 비렸다. 입 안쪽의 여린 살이 터지고 볼이 부어 오른 것이 느껴졌다.
마냥 맞고 있는 것은 타카스기 신스케라는 사람의 성정에 어울리지 않았다. 타카스기는 가만히 있던 전신에 신경을 움직이라는 신호를 쏘아대었고 이윽고 긴토키의 두 손을 잡아챘다. 손목을 잡힌 긴토키가 잠시 가만히 있었다. 타카스기는 그 틈을 타 왼 손으로 왼 눈을 짓눌렀다. 긴토키의 손이 재빨리 막았다. 다시 주먹질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절한 반항을 시도했다. 그의 손목을 잡은 타카스기의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재촉하듯이 주먹질이 오가는 교차시간이 짧아져갔다.
"안돼."
타카스기는 ‘그 날’ 이후 처음으로 오랜만에 긴토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죽으면 안돼."
몇 차례의 주먹질 끝에 긴토키가 멈췄다. 타카스기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열심히 하나 남은 찡그린 눈에 긴토키를 담았다. 여태 무표정을 일관해 오던 얼굴이 명백하게 불안함을 비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며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얼굴을 고정시켰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폭력을 받아낸 타카스기의 숨이 거칠고 가냘펐다. 긴토키는 그의 턱을 조금 들어올렸다. 의안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오른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시야에서 의안이 빈 공간으로 들어갔다.
죽으면 안돼.
의안 착용을 성공시키기 전 긴토키가 한 말을 타카스기는 속으로 곱씹었다. 이후에 다른 말은 없었다. 아까의 미미한 표정은 어디다 두었는지 다시 무표정이었다. 조금 가빠 보였던 긴토키의 숨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긴토키는 타카스기의 위에서 내려와 다시 옆에 자리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앉았다. 얼이 빠져있는 의무병의 지시 없이 능숙하게 소독하고 다시 천을 올려주었다. 뒤처리를 척척 하는 가 싶더니 그 뿐만 아니라 언제 가져온 것인지 죽이 든 그릇과 숟가락을 드는 것이었다. 터진 입 안에서 피 맛이 났다. 폭력을 행사한 데에 따른 열기가 붉은 눈에 감돌았다. 그럼에도 한 없이 냉정한 얼굴이었다.
아까까지는 죽어라 패더니 다시 죽을 먹이려는 긴토키를 보며 의무병이 마치 미친 사람 보듯 쳐다봤다. 그 양상이 웃겨서 타카스기는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웃으려고 입을 조금 벌인 찰나, 비릿한 쇠 맛에 입을 닫았다. 곧 제 입술에 먹을 거냐는 의사를 묻는 숟가락이 닿을 때, 입을 열지 않으면 또 맞을 지도 몰랐다. 강제로 턱을 벌려지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만히 맞아주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타카스기는 입을 쉽사리 열지 않았을 것이 확실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야간 출격을 알리는 전령이 오지 않았다면, 타카스기는 보다 더 맞았을 게 뻔했다.
백야차는 나오시오! 출격 명령이오!
긴토키는 휘젓던 죽 그릇과 숟가락을 의무병에게 떠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면서 붉은 눈이 타카스기를 훑었고, 타카스기는 비록 왼 눈이 사라졌을지언정 그걸 놓치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마주한 붉은 눈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긴토키가 문을 열었다. 타카스기는 대답을 들려줘야 한다고 계속 생각했었다.
"너도야."
문지방을 넘으려던 그가 몸을 멈췄다. 타카스기는 천장을 바라보던 눈을 돌려 멈춰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입안이 바삭바삭 타들어갔다.
"너도다 긴토키."
숨을 골랐다. 자연스럽게 해야 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찰나가 두 마디에 끝났다.
"죽으면 안돼."
돌아보지 않는 그는 답을 않았다. 다만 대답대신이라 할 것으로 얼굴을 반쯤 비추다가 나갔다. 안쓰러운 웃음으로 슬픔을 애써 덮어버린 얼굴이었다. 무표정이 산산조각 났다. 그런 표정은 그에게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안도의 웃음이었다는 것을, 타카스기는 가츠라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얼굴을 보고 나서야 온갖 감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서, 타카스기는 몸을 움직이기 힘든 제 상태를 저주했다. 해소할 데 없는 복수심이 독처럼 전신에 퍼졌다.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야만 했다. 이깟 목숨을 위해 땅 위에 흩뿌려진 피가 너무나도 고귀해서, 그 위에 제 피를 뿌리는 것이 불경하게 느껴졌다. 긴토키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그에게 저는 지워내야 할 업이자 지고가야 할 저주였다. 살아주겠다. 살아서 복수해주리라. 의안을 넣은 왼 눈에서 이루 말 못할 고통이 쏟아져 흘러나왔다. 온 몸에 힘이 바짝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매우 괴로워 보임에도 입매만큼은 웃고 있는 그 꼴이 기괴해서 소름 끼쳤다고 했다. 암 웃어야 하고 말고. 이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더한 고통이어도 웃어주리라. 보다 무거운 죄를 진 너를 위해 내가 웃어주리라.
7.
평소의 괴물 같은 회복력은 어디다 두고 그렇게 병약한 이가 되었는지 정말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싶었더랬다고, 가츠라가 말했다.
"그런 멍청한 생각을 잘도 하는군."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흘리는 친우를 가츠라는 쓰게 쳐다보았다. 그들은 변했다. 행동하는 것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는데도 풍기는 분위기하며 행위에 담긴 의미하며 많은 것이, 통째로 변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감정이 변하면 아무리 같은 행동이어도 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 방금의 웃음도 예전에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지금의 타카스기는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 가츠라 역시 남 말할 처지는 못되었지만. 타카스기는 언제나 고지식하리만큼 단정했던 친우의 얼굴에서 그 밑바탕에 깔린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건 저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못내 서글퍼서 하늘 위에 걸린 달을 바라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보름달이 밝았다.
의안을 착용해도 달리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제하기 나름이라고, 타카스기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살기 위해 살아갈 기력을 요구했다. 스스로 수저를 뜨고 눈에 관한 주의사항과 관리법을 익혔다. 오랫동안 누워있던 몸은 움직이기를 거부했고 온몸에 진득하니 달라붙은 나태와 무기력을 떨구기 위해 저를 말리는 치들에도 불구하고 타카스기는 아예 이불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다시 몸의 감각을 예리하게 벼리기 위해 몸을 풀어야만 했다. 검을 휘두르는 것만큼 제격인건 없었다. 제 것 같지 않은 새로운 시야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검을 휘둘러야 했다. 긴토키는 그 날 부로 찾아오지 않았다.
"난 고작 눈 하나를 잃었어. 몸만은 멀쩡하다고."
그 눈과 함께 잃은 것이 이루 말할 것 없이… 소중하고 크나큰… 입안에만 맴돌고 도통 나가지를 않기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조용한 그를 슬쩍 쳐다봤다가 가츠라는 팔짱을 끼고 위에 걸린 보름달을 바라봤다. 만월이로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타카스기는 왼 눈에 손을 얹었다. …어서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야지. 그에 답하듯 타카스기의 허리춤에 찬 검이 흔들렸다.
밤은 고요했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환자동 또한 앓는 이 하나 없이 모두 고요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망을 보는 병사를 제외하고 깨어있는 사람은 둘 뿐이었다. 타카스기는 환자동에서 귀병대가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진지에 귀병대의 총독이 완쾌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를 듣고 늦은 밤 가츠라가 그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지만 전혀 반갑지도 달갑지도 않았다. 앓는 동안 타카스기의 시간은 ‘그 날’에 멈춰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그 절벽 위에 가츠라와 함께 밧줄에 묶여 있었다. 그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새로운 눈을 부여 받은 그날부터였다. 비록 더는 보이지 않을 지라도 외눈에는 자리하고 있었다.
잠에 든 부하들을 뒤로 하고 마루로 나와 달빛을 쬐고 있던 타카스기에게 가츠라가 찾아왔다. 둘은 열려있는 문만큼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서 나란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인사말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았다. 아직도 반복되는 끔찍한 참상과 죄의식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있는 둘이었다.
먼저 말문을 튼 것은 가츠라였다. 쓰러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긴토키 녀석이 저를 간병했다고 가츠라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의식을 차리지 못한 날도 저를 찾아왔을 긴토키의 꾹 다물렸을 입매를 상상하며 타카스기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 건 바라지 않았어. 가츠라가 하늘 아래 진지 옆으로 작게 자리한 숲의 어딘가를 바라보는 타카스기를 바라봤다. 어딘가를 처량하게 쳐다보는 그 눈이 이제는 한 짝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아직도 익숙지 않았다. 할 말이 그거뿐인가? 달리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원체 이런 성정이었다. 가츠라 역시 타카스기의 그런 부분을 잘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입을 닫고 팔짱을 낀 그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 모습이 방금까지 보고 있던 두꺼운 뿌리를 가진 나무 같다고 타카스기는 생각했다. 옛날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는 저보다 강하고 올곧았다.
흙 바닥 어딘가를 굴러다니던 눈알을 모아 작은 무덤을 만들어줬다고, 긴토키가 만들어줬다는 계속된 가츠라의 말에 타카스기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죽으면 안돼.
타카스기가 작게 읊조리는 것을 가츠라는 똑똑히 들었다. 이내 타카스기는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죽으면 안돼.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란 말이냐 안 그래? 즈라."
가츠라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이 고통스런 어둠이 옆의 친우에게는 이제 항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가슴 아렸다. 그들은 죽으면 안되었다. 저희들의 스승을 목을, 그의 피를 받쳐 살아난 목숨이었다. 한낱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나약함으로 초래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짐을, 저희보다 더하면 덜했지 덜하지는 않을 녀석에게 지워버렸다. 죽는 것도 죄가 되고 살아가는 것도 죄가 되었다. 녀석이 어떤 심정일지… 가츠라는 말을 다 잇지 않았다. 안 해도 타카스기는 알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저가 살아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는 긴토키는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 같았다고 가츠라는 그렇게 평했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야차의 형상인 주제에 눈만큼은 불안함을 잠재우지 못해 흔들리는 한없이 나약한 아이. 말없이 저를 바라보는 긴토키에게, 아직 그에게 말을 붙이는 것이 못내 괴로움에도 애써 무시하며 돌아가자고 말하면 긴토키는 몸에서 힘을 빼었고 그대로 진지로 돌아 오자마자 항상 바로 환자동으로 향했단다. 그걸 몇 번이고 반복했고 긴토키가 출전하지 않은 날, 전장에서 돌아온 그의 앞에 어느새 온 건지 그 녀석이 있었다고.
조금은 서늘한 바람에 가츠라의 머리카락이 잘게 날렸다. 나는 내가 먼저 말해줬다 타카스기. 타카스기는 제 이름을 호명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죽지 않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웃더구나. 아. 무슨 웃음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긴토키가 찾아왔던 날 봤던 그 얼굴과 같았으리라. 입은 미소를 띠는데 미간엔 주름이 잡혀있어 어두워 보였다. 그 밑에 자리한 붉은 눈이 무슨 심정으로 빛나는지 새빨갰다.
그 붉은 색에 타카스기는 흩날리는 피를 떠올렸고 잘려서 날아가는 머리를 떠올렸고 피에 절은 백야차를 떠올렸다. 웃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아 하는 그 모습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올 것만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상대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분노와 잔인함으로 바뀌어갔다. 타카스기는 그 얼굴이 나가고 끝없는 고통이 몰려와 의식이 몽롱해지는 와중에 다짐했다. 다짐하고 다짐했다. 돌려주겠다고 꼭 복수해주겠다고. 설령 빼앗긴 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빼앗은 자를 벌하리라고.
"전혀 모르겠군."
아는 것이 두려웠다. 가능하면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스승은 모두에게 소중했지만 긴토키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부모고 가족이었다. 스승인 그가 곧 긴토키의 세상이었다. 긴토키는, 저희는 저희의 나약함 때문에 스승을 잃고 긴토키의 세상을 부숴버린 것이었다. 타카스기는 두려웠다. 죽지 말라는 그의 말이 복수를 위한 것인지가 두려웠다. 스승을 죽게 만든 저를 탓하는 것인지 두려웠다.
"그게 뭘 담고 있는 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타카스기를 흘기며 가츠라는 몸을 틀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에 띄게 흔들리는 타카스기의 모습은 결코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아직 몸이 성치 않으니 그만 들어가 자라. 타카스기는 슬며시 등을 보이는 가츠라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타카스기. 가츠라는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몸을 돌리지 않은 채 굳건하고 바른 등만을 타카스기에게 보이며 말을 이었다. 긴토키는 너를 탓하지 않아. 타카스기의 오른 눈이 갑작스러움에 씰룩였다. 그리고 나도, 너도 역시 긴토키를 탓하지 않지. 가츠라가 고개를 돌려 달을 바라봤다. 달빛에 희뿌연 하게 빛을 품은 그의 옆얼굴이 굉장히 서러워 보여서 타카스기 역시 덩달아 서러워졌다. 우리는 비난해야 할 자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지. 가츠라는 잠시 마른 입을 다셨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죽마고우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서로의 속내를 낱낱이 털어놔야 하는 과제를 풀기 위한 초석으로 삼기로 했다. 그 얼굴은, 그 웃음에 담긴 건 안도감뿐이야. 네가 몸 성치 않지만 살아서 다행이라고.
가츠라가 떠났다. 홀로 남은 타카스기는 등을 벽에 기댄 채로 천천히 주저 앉았다. 만월의 밤은 구름 한 점 없었고 선선히 부는 바람만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왔다. 안도감에 젖는 다는 게 그렇게 비통한 얼굴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지 않고서는 단정지을 수 없는 거다, 그런 건…"
달은, 꽉 찬 보름달은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짓던 스승을 떠올리게도 하고 하얗고 몽실몽실한 머리털을 가진 친우를 떠올리게도 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추억과 유대를 떠올리게 해서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빛 바랜 그리움이 달에 투영되었다. 타카스기는 달빛을 탓하며, 두 개 분의 업무를 홀로 처리하느라 피곤했던 오른 눈을 감았다.
8.
"걱정 마라. 네가 스스로에게 죄를 지우면서까지 살린 목숨이다. 함부로 할 생각 없어."
거칠게 숨을 내쉬며 가츠라는 최대한 괜찮은 것처럼 평정을 가해 말했다. 갑작스럽게 후퇴를 하는 통에 동료들을 위해 최전선에서 적들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스스로의 직위와 실력이 강한 탓이었다. 끝 없이 몰려오는 적에 포위당하기 직전 동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져 나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아니지 아니고말고. 조금은 쉬기 편해진 숨에 땅에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제 앞에서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녀석을 위해서라도 살아 돌아와야 했다. 칼자루에 기대어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려니 어느새 긴토키가 다가와 있었다.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몸을 숙여 저를 쳐다보는 붉은 눈이 익숙했다.
"죽지 않아. 죽지 않을 거다 긴토키."
가츠라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상대방은 눈을 피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츠라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했냐 요녀석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긴토키 역시 몸을 일으켰다. 신경 쓰지 않고 함부로 한 탓에 흰 옷이 더러워져 있었다. 그는 잠시 서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가츠라의 피 묻은 의복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하얀 손이 가츠라의 어깨 위에 얹어졌다. 그는 가만히 기다렸다. 하얀 머리가 나풀나풀 바람에 날렸다. 그 미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것이 한없이 약하고 여려 보였다. 미약한 바람을 타고 미약하게나마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로 됐어."
긴…! 그 때 가츠라는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기분을 느꼈다. 세상이 깨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틀이, 유리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눈 앞의 긴토키는 웃고 있었다. 웃고 있지만 웃고 있는 게 아닌, 난도질 당한 심정으로 평정을 가장하고 진심을 다해 안도하고 있었다. 아아. 가츠라는 떨어져나가는 긴토키의 손을 잡고 싶었다. 고된 전투에서 검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던 손은 덜덜 떨리기까지 하며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잡아라. 잡아라. 뇌가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낸들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츠라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서당에서 신동으로 불리던 그였다. 무의식적으로 깨 물은 입술에서 쇠 맛이 났다. 떠나가는 그를 잡아야 했다. 무언가, 그에게 물어봐야만 할 것이 있었다.
"긴토키…!"
움직이지 않는 물리적인 수단대신 가츠라는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비가시적인 소리는 분명하게 긴토키에게도 닿았다. 가츠라에게서 떠나가려던 긴토키가, 돌린 등을 다시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너도 죽지 않도록 하는 거겠지?"
가츠라는 소리 없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큰 용기를 내고 큰 결심을 한 후 말한 것이었다. 긴토키의 얼굴에서 경미한 놀라움을 볼 수 있었다.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그 얼굴을 천천히 깨트려갈 수 있다는 것에 가츠라는 가슴이 뭉클했다. 역시 강했다. 긴토키는 그의 생각 이상으로 더 강한 사내였다.
"너도 죽지 않는 거다. 내게 약속해 긴토키."
가츠라는 심장이 쿵쾅거려서 시야마저 흔들릴 것 같았다. 눈 앞의 놀란 얼굴의 상대를 보고 있으면 ‘그 날’의 참상이 오버랩 되었다. 며칠간 애써 전장을 누비며 잊으려고 무시하려던 것이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스승은 언제나와 같아서 마치 현실이 꿈같이 아득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피의 분수는 친우들을 더럽히고 저 자신을 더럽혔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죄인이다. 그 죄를, 홀로 손을 더럽힌 너 혼자 모두 짊어질 필요는 없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는 날이 계속될수록, ‘그 날’이 눈에 밟히고 변해버린 친우가 눈에 밟혔다. 기회였다. 스승을 제물 삼아 살아남았기에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끝까지 아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 그렇게 말한 건 너였어. 그렇게 삶의 의지를 되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이 눈에 들어온 것은 동료들이었다. 무참히 죽어나가는 피는 붉었고 그건 스승의 것과 같은 색이었다. 가츠라는, 목숨을 잃고 져버린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살기로 그렇게 굳게 다져왔다.
긴토키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천히 변하는 그 표정이 다른 수단으로 가츠라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어째서. 가츠라는 그런 표정을 짓는 긴토키를 처음 봤다. 어째서냐 긴토키.
"하하. 약속이라."
긴토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 손은 검에 걸쳤다. 자연스럽게 이동한 시선에 닿은 검은 평소 그가 알던 긴토키의 검이 아니었다. 특정한 검에 애착을 갖는 긴토키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전장에 나가지 않을 때면 항상 들고 다니던 검이 있었다. 검은색 손 자루의. 스승이 주었다고 들었던.
"약속 못 하겠어 즈라. 너무 무겁더라 약속이란 거."
그렇게 말하며 긴토키는 익숙한 얼굴을 했다. 익숙한 웃음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기… 다시 그를 부르기도 전에 긴토키는 완전히 몸을 돌렸다. 가츠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아직도 혼란스러운 기억을 살피자면, ‘그 날’ 스승을 베었던 긴토키가 들고 있었던 검은, 분명, 분명 검은 손 자루였다.
"긴토키 네 검은 어디 있지?"
가려던 긴토키가 고개만 틀어 가츠라를 바라봤다. 걱정으로 일그러진 친우의 얼굴을 보면서 긴토키는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중요하지도 않은 거에 신경 쓰지 말라고 대대장.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긴토키가 차고 있는 검을 움직였다. 이 검도 나쁘지는 않아.
"긴토키."
진중한 가츠라의 목소리에 긴토키가 뒷목을 주물렀다.
"이제 안 쓰기로 했어."
그 검은 이제 안 쓸 거야. 수명을 다했거든. 그렇게 말하며 긴토키는 손을 흔들었다. 나 진짜 간다. 가츠라가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는 발걸음을 뗐다. 나중에 또 봐. 즈라. 그렇게 말하며 어깨너머로 손을 흔드는 그는 이내 병사들 사이로 사라졌다. 주변과 이질적으로 하얀 주제에 흔적도 없이 그 자취를 감췄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긴토키가 망을 보던 날 밤, 가츠라는 긴토키에게 그 검을 보고 싶다고 허락을 구했다. 긴토키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건 그냥 알아서 보면 되잖아. 고집을 부리듯 네가 보라고 말해야만 볼 수 있다는 가츠라에 긴토키는 살짝 난감해했다. 봐도 돼. 그런… 긴토키는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쉬었다. 그 검.
긴토키가 자세히 일러주어 가츠라는 시간을 공들이지 않고도 쉽게 검을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 다 함께 밤을 지냈던 적이 있는 곳이었다. 쿨쿨 잠든 병사들을 피해 건물의 구석 모서리로 갔다. 작은 벽장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고 안 쪽의 나무바닥을 들추자 더러운 천에 쌓인 무언가가 드러났다. 긴토키의 옷이었다. ‘그 날’ 입고 있었던 옷이었다. 하오리는 이미 이세상에 없는 스승과 함께 보내주었다. 하오리 안의 옷도 피가 꽤 묻었었구나 싶었다. 천천히 뭉쳐놓은 옷을 풀어내니 드러난 건 기억 속에 항상 긴토키가 들고 다니던 검이었다. 어린 시절 항상 그의 허리춤에 자리해있던, 검이 없으면 자지 못하는 긴토키가 품 안에 넣고 자던 검이었다. 쇼요에게서 받았던 검이었다.
군데군데 날이 닳고 빠져있었지만 날카로운 곳은 금세라도 베일 것만 같았다. 이 검으로 스승의 목을 벴고 이 검이 스승을 목숨을 앗아갔다. 날붙이에 묻어 있는 붉고 굳은 핏자국들은 스승의 것이 분명했다. 긴토키와 저희들과 같이 세월을 지나온 검은 제 원래 주인의 목을 베고 그 피를 취하고 현 주인의 슬픔과 절망에 젖어 검으로서의 생을 다했다. 아니 강제로 봉인했다고 해야 맞는 것일지도 몰랐다. 두 손에 얹은 검은 분명 다 낡아빠진 검인지라 가벼워야 할 텐데도 한 없이 무거웠다. 어쩐지 꿀밤을 때리던 스승이 생각나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칼 끝에 박혔었던 무언가를 떠올렸다.
무슨 심정으로 이 검을 넣어 둔 것일까.
다시 검 집에 검을 넣고 천으로 감싸서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스승의 피로 젖고 친우의 살을 뜯어낸 검이었다. 이것은 표식이었다. 죄의 표식이었다. 본디 검에 대해 더 말을 붙이고 싶었으나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묻어도 오히려 제 살을 깎는 일이 될 것이었다. 물어도 어차피 회피할 것이 뻔했다. 긴토키가 홀로 짊어지려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은 그 또한 죄인이기 때문이었다. 검을 보고 난 후 한층 더 묵직하게 짓누르는 죄책감과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무거웠다. 그래도 머리가 맑다는 생각이 드는 건, 더 이상 그 검에 다른 피가 묻을 일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가능하다면, 타카스기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어쩌다 마주친 긴토키는 피에 절어 있었다. 가츠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지만 좋지 않은 감정이 담겨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 없이 다가와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주었다. 어어 야. 긴토키가 조금 당황해 했다. 너 더러워져도 몰라 임마.
긴토키. 가만히 가츠라가 해주는 대로 옷을 벗고 갑주를 내려놓은 후 긴토키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옆에 아무렇게 엎어놓은 검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가츠라는 여전히 그의 피 묻은 머리를 털어주고 갑주를 닦아주었다. 엄마도 아니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츠라가 긴토키에게 물었다.
"타카스기 녀석과 말은 나눠보았나?"
돌아온 것은 쓴웃음뿐이었다.
9.
"긴토키."
그 목소리는 익히 들어 잘 아는 아주 익숙하고, 정겹다기 보다는 오히려 짜증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달빛이 유독 강하다고 느껴졌기에 긴토키는 밤 마실을 나왔다. 그래봤자 마루에 앉아 달을 보는 것뿐이었다. 쌀쌀한 바람에 발끝이 시릴 무렵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타카스기가 찾아왔다.
긴토키는 놀란 눈으로 한 쪽밖에 남지 않는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을 피했다. 긴토키. 마치 피하지 말하고 하는 냥 제 이름을 부르는 탓에 긴토키는 다시 그 눈을 바라보았다.
전쟁 통에 어렵사리 구한 의안은 눈알이 그려지지도 않은 미완성품이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꺼지듯 움푹 들어가는 눈꺼풀을 막아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함몰되지 않는다고 큰 도움이 된다고 의무병에게 들었던 말을 긴토키는 기억했다. 잘 맞는 의안만 있으면 상처의 회복도 빨라지고 고름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상처를 입은 것보다는 그것이 감염되거나 속에서 곪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을, 전쟁을 통해 질리도록 보아왔었다. 눈은 특히나 열악한 전쟁 통에서 건드리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부위였다. 최대한 면역력을 높이고 열을 낮추고 비어버렸을 지라도 그 빈 공간을 지켜야 했다.
앞머리와 어둠에 잘 보이지 않던 왼 눈이, 구름에 가려져있던 달이 드러났을 때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긴토키는 그 눈이 조금은 오싹했다. 미완품인 의안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지도 않았다. 암흑. 타카스기의 왼 눈은 그 눈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도 어둠이었고 그걸 보는 이에게도 어둠뿐이었다. 어쩌면 긴토키는 타카스기와 같은 어둠을 마주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붕대 감아주지 않겠어?"
입은 잔잔한 미소를 두르고 있는데 눈은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타카스기는 변했다. 그의 주변에 감도는 공기부터 무언가가 변했다. 그리고 그건 긴토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손에 흰 붕대를 든 채 타카스기가 그걸 내밀었다. 긴토키는 말 없이 끝이 바람에 나부끼는 붕대를 쳐다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무언가를 보고 있노라면, 눈 앞을 스쳐 지나간 그 머리칼이 떠올랐다.
"뭐야 뭐야. 싫다~ 너는 손이 없는 겁니까? 발이 없는 겁니까?"
타카스기의 입매가 진해졌다. 천천히 눈에 보이는 그 움직임에 긴토키 역시 표정을 풀었다.
"……미안하지만 나 붕대 감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명백한 거절의 의사가 지금 둘의 관계였다. 붕대를 든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아아. 알고 말고."
그렇군. 내 스스로 해야 하는 거군. 나 홀로 마주봐야 하는 거였어. 타카스기는 빈 손으로 천천히 왼 눈을 덮었다.
"예전에 한 번 맡겼다가 줄무늬스기 군이 되었었지."
차라리 그 때가 좋았을 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걸 막는 건 상당히 힘들었다. 말 없이 바닥을 내려다 보는 그를 긴토키는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마침내 발을 떼야 할 때가 왔을 때.
"이리와."
짤막한 말 한마디에 타카스기는 홀린 듯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를 마주보고 앉았다. 긴토키는 자세를 바꿔 무릎을 꿇고 앉았다. 높이 올라간 시선을 타카스기는 놓치지 않고 계속 쫓았다. 타카스기의 손에 있던 붕대가 긴토키의 손으로 넘어갔다. 처음의 시작은 정수리였다. 고정시키고 그대로 쭉 내려와 왼 눈과 코 사이를 가로질렀다. 하얀 선으로 타카스기의 얼굴이 이등분되었다. 하나는 검고 하나는 어두운 두 눈이 긴토키를 마주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검은 눈을 점차 붕대로 덮어갔다. 왼 쪽 귀 밑으로 후두부를 지나 정수리로 올라온 붕대는 다시 밑으로 내려와 타카스기의 얼굴을 덮었다. 그의 얼굴의 적어도 삼분의 이가 붕대 밑으로 가려지고 있었다. 긴토키는 제 손으로 그 얼굴을 하얗게 지우는 것이 묘하게 긴장이 되었다. 제 손에 의해 지워지고 덮어지는 왼쪽 눈과 타카스기의 얼굴 반쪽은 이대로 영영 사라지는 것인가?
통풍이 되도록 힘을 조절해가며 감은 붕대는 나쁘지 않았다. 긴토키의 붕대를 감는 실력은 좋지는 않을지언정 나쁘지 않았다. 전장에서 다져진 실력이었다. 다 감은 뒤 끝을 고정시키려는 긴토키를 타카스기가 말 없이 막았다. 긴토키도 별다른 말 없이 바로 손을 뗐다.
묶이지 않은 끄트머리가 바람에 나부꼈다. 타카스기는 그대로 일어나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남은 긴토키는 그가 놓고 간 남은 붕대를 보다가 손에 쥐었다. 남은 건 쓸모 없이 애매한 길이였다. 이내 손에서 붕대를 내려놓고 긴토키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는가.
그것이 긴토키와 타카스기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10.
막부는 막부를 위해 피를 흘린 무사들을 배반했다. 많은 이들이 숙청당했다. 타카스기와 가츠라, 긴토키 쪽 또한 숙청과 추적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없었다. 일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세력을 분산시키기로 했다. 상황은 시급했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모두가 속절없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추적을 막기 위해 귀병대가 미끼가 되어 갈라졌다. 셋이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한 채 헤어져버렸다. 가츠라는 이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달리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귀병대 덕분에 가츠라를 선두로 하는 남은 이들은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1.
종전이 공표되었다. 물밑에서 이뤄지던 숙청이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숙청의 위협은 작은 세력이 된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할 수 없이 또 다시 갈라져야만 했다. 백야차를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긴토키가 선봉을 자처하며 나섰다. 가츠라 쪽과 긴토키 쪽으로 나누어졌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건만 가츠라가 찾을 때는 이미 긴토키 일행은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아직 둘 사이에도 끝내지 못한 말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하얀 뒷모습을 생각하고 있자니 저를 따르는 부하와 동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와서 가츠라는 눈을 감았다. 일단은 숙청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12.
미끼를 자처하여 동료들을 추적의 눈에서 돌리게 했다. 긴토키는 너무도 지쳐있었다. 동료들이 잘 피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죽마고우 두 명이 괜찮을 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둘에게는 든든한 부하들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둘은 살아남을 것이었다.
그러면 난?
건물 옆으로 저를 뒤쫓는 이들이 시끄럽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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