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즈::가상다반(家常茶飯)
가상다반(家常茶飯)
“여 꼬맹이들 잘들 쉬고 있냐?”
우하하하하. 호탕한 웃음 소리가 긴토키와 가츠라, 타카스기 셋이 있는 천막 안을 채웠다. 그렇게 신경 쓰듯 말하면서 뒤에 따라붙는 웃음소리에 타카스기는 얼굴을 구겼다. 이 부대에 합류한지 이제 겨우 나흘째였지만 여전히 다른 이들을 저희를 어린애 취급하고 있었다. 거시기에 털 나면 이미 성인 아니냐며 바락바락 대들던 긴토키 역시 이제는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도 지쳤는지 잠자코 얼굴을 구기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시 받아야 하는 거야 대체?! 신경질을 부리듯 긴토키가 젓가락을 내던졌다. 가츠라 역시 좋은 기분은 아닌지라 가만히 마지막 한 젓갈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쇼요를 되찾겠다는 명목 하에 일단 뛰어든 양이전쟁이었지만 셋은 이제 막 갓 태어난 아기 마냥 풋내기에 불과했다. 너희 사람을 죽인 적은 있냐?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오는 턱에 타카스기와 가츠라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천인이 우리랑 다르게 생겼다고 쉬울 거 같아? 그들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야. 다른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쉬운 게 아니야. 알았으면 돌아가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아. 아직 모르는 가혹한 세상을 아는 눈동자가 진중함을 담고 있었다. 병사가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부족해도 너희 같은 풋내기는 처음 나가자마자 끽이야. 돌아가라는 분위기에 다급해진 가츠라가 주먹을 꽉 쥐고 머리를 굴렸다. 한시라도 빨리 전장에 뛰어들어야 스승을 찾는 데에 필요한 정보와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다른 부대는 앞으로 닷새는 족히 걸리는 곳에 있었다. 여기가 그들이 바라 마지않는 스승을 되찾기 위한 시작점이었다.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타카스기가 입을 열 찰나, “있어.” 그렇게 공기를 가르고 긴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카스기와 가츠라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건가 싶어 긴토키를 바라보았지만 긴토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남자를 대하고 있었다. 부대장이라고 한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띠며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긴토키의 눈동자가 천막 아래의 어두운 등불에 비쳐 빛을 품었다. 아득하도록 새빨간 눈동자에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부대장의 얼굴이 비쳤다.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있고말고.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이. 긴토키는 무슨 배짱인지 싶을 정도로 여유가 흘러 넘쳤다. 표정은 평소와 같은 심드렁한 무표정이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단호했다. 타카스기와 가츠라가 흔들리는 눈으로 긴토키를 바라보고 있자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에 들었다. 부대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이 의아해하자 부대장이 입을 열며 말했다. 병사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니들이 죽어도 내 탓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부대장을 다른 병사들이 나무랐다. 뭐야 진짜 받아주는 거야? 아아 시동으로라도 쓰지 뭐. 요리나 시킬까 요리? 그런 비하하는 소리를 듣는 와중에도 타카스기와 가츠라는 일단 쫓겨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긴토키의 행동력이 이렇게 빛을 발휘한 건 처음이라고 둘이 알게 모르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시 긴토키의 말이 소음 속에서 또렷이 들렸다.
걱정 마요, 여기 있는 당신들보다 먼저 죽지는 않을 거거든.
끄아아아아아. 그 말이 터져 나왔을 때의 그 상황을 아직도 타카스기와 가츠라는 치가 떨리도록 잘 기억하고 있었다. 뭐야 저 녀석 왜 저러는 거야 즈라!! 즈라 아니다 가츠라다!! 긴토키 이 어리석은 녀석! 그러다가 쫓겨나면 어쩌려고 저런 건방진 소리를!! 그 때 어떻게 생각이 통했는지는 모르지만 둘은 같이 비명을 지르며 제발 부대장과 병사들이 관대한 이들이기를 바랐다. 배짱 한 번 좋구나. 부대장이 긴토키를 보며 말을 던졌다. 그의 입가에 피어 오르는 미소에 긴토키 또한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배짱뿐만 아니라 실력도 좋아. 기대해.
그 자신만만한 얼굴에 타카스기와 가츠라는 퍼뜩 무언가를 떠올리며 부대장을 바라보았다. 쇼요. 그들은 스승을 구출해야 한다는 서당 아이들과의 약속을,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저희들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또랑또랑 빛이 난다며 부대장은 셋을 병사로 받아들여주었다. 검은 이미 각자 가지고 있었기에 적당한 무구를 배당 받았고 셋은 부대장의 휘하 아래로 배치 받았다.
그게 나흘 전 일이었다. 그렇게 당차고 건방지게 부대에 들어온 병사는 처음이라며 그들은 유명인이 되었고 지나가며 그들을 보는 이들마다 입방아를 찌어대었다. 여 꼬맹이들. 풋내기들. 거시기에 털은 났냐? 뒤에 이어지는 웃음소리는 그들에게는 사소한 낙이었지만 셋에게는 극심한 짜증만 일으킬 뿐이었다. 아 털 났다잖아!! 뭔데 자꾸 거시기 털에 관심을 가져?! 내 털이 그렇게 궁금해?! 볼래?! 보면 믿어줄래?!! 그 때마다 나오는 긴토키의 반응에 유독 재미있어하며 놀리는 이들도 있단 걸 긴토키만 빼고 다 알았다.
셋이 들어온 건 한 차례 큰 전투가 있은 직후였기에 이 나흘간 셋은 작은 전투에도 나가보지 못했다. 그 동안 철저히 훈련시켜 주겠다는 명목으로 셋은 사람 모양의 지푸라기 인형을 표적 삼아 검술 연습을 하기도 했다. 실력 좋다던 긴토키의 말은 대인전 연습에서 증명되었다. 가츠라와 타카스기, 긴토키는 어렵지 않게 병사들을 이겼다. 진 이들은 정말 꼬맹이들 주제에 대단하다고 칭했고 지켜보던 이들은 어린 애한테 졌다며 진 이들을 비방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셋에게 병사들이 당하는 사이 처음으로 가츠라가 당하고 나서야 부대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왔다.
너희 지금부터 취사를 맡아라. 강하게 반발하는 가츠라와 타카스기 뒤에서 긴토키만 조용히 있었다. 너희는 무언가를 죽여본 적이 거의 없을 테니까. 부대장은 말을 삼켰다. 앞으로 사냥을 해오도록. 그 이후의 요리까지 전부가 너희가 너희 손으로 해라. 다음날 아침 댓 바람부터 셋은 숲 속을 헤집으며 사냥을 다녀야 했다. 처음 덫으로 잡은 너구리를 풀어주었다가 가츠라가 긴토키와 타카스기에게 맞기도 했다. 빈 손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기에 결국 잡은 토끼 세 마리를 들고 갔다. 하얗고 보드라운 털을 가진 귀여운 토끼가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둥대었다. 한 명이 귀와 다리를 잡아 쭉 펴놓으면 다른 한 명이 토끼의 머리를 치기로 했다. 저 자식들 우릴 물로 보는 거야?! 치를 떨며 성을 내는 타카스기는 그 말과는 다르게 얼굴이 어두웠다. 긴토키는 이게 요리를 빙자한 실전연습이란 걸 알았다. 타카스기와 가츠라도 알고 있었다. 확실히 어떤 생명을 제 손으로 꺼트린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 시작이 이렇게 귀엽고 작고 약한 생물인 것은 더더욱 불편했다. 끝내 가츠라가 하지 못하고 칼을 놓자 다음 타자로 긴토키가 나섰다. 토끼의 눈도 새빨갛고 긴토키의 눈도 새빨갰다. 그 작은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긴토키는 팔에 힘을 주었다. 미안하다~ 그렇게 흐느적거리는 목소리의 후에는 찍어 내린 칼의 소리만 들렸다. 타카스기가 조금 얼빠진 얼굴로 이미 사체가 되어버린 토끼를 들어올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멍하니 쳐다보는 가츠라와 타카스기를 긴토키가 불렀다. 망설임 없이 해버린 긴토키의 심드렁한 얼굴을 보고 가츠라와 타카스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 어린애처럼 굴면 어떻게 해? 우린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알잖아. 훈계하는 거 치고는 말하는 당사자의 눈이 풀려있어서 되려 힘이 빠졌다. 잘난 체 하지마. 그렇게 말하며 타카스기는 긴토키가 잡고 있는 토끼의 목을 쳤다. 가죽이나 벗기라며 타카스기에게 방금 그가 내려친 토끼의 사체를 던져주고 긴토키는 가츠라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가츠라는 침을 꼴깍 삼키고 토끼를 붙잡고 있는 긴토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검은 눈에 덜덜 떠는 토끼가 비쳤다. 수염의 떨림이 마치 공포에 질린 토끼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눈을 꼭 감고 마침내 가츠라는 손에 든 칼로 내려쳤다.
그런 훈련을 빙자한 취사를 한지 이틀째. 생명을 빼앗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 건 여전하지만 이제는 거리낌 없이 칼을 휘두르는 정도가 되었다. 정작 그런 훈련을 시킨 당사자인 부대장은 너무 빨리 익숙해졌다며 혀를 내둘렀다. 너희 너무 나쁜 녀석들이잖아. 왜 그렇게 금방 타락한 거야?! 난 너희가 질질 짤 걸 기대했는데. 돌아온 건 칭찬이 아니라 놀림을 빙자한 지적질이어서 셋은 어이가 승천할 뻔했다.
오늘 저녁엔 사냥에 능한 병사의 도움을 받아 사슴을 잡았다. 타카스기가 능숙하게 사슴을 고정시켰고 가츠라가 능숙하게 머리를 내려쳤다. 그 뒤는 둘이 능숙하게 가죽을 벗겨 곧 맛난 탕이 될 고기를 다듬었다. 긴토키의 솜씨는 엉망진창이었지만 다른 취사병의 도움을 받아 제법 맛이 좋은 탕을 끓여냈다. 사슴이래 봐야 고작 두 마리를 잡은 터라 병사들이 고기를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그래도 고기국물이 어디냐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국이 돌아갔고 사냥한 노고라며 긴토키와 가츠라, 타카스기에게는 고기 건더기도 주어졌다. 장난하냐!!! 그래 놓고 제일 큰 건더기를 집어 먹는 취사병 한 명에게 긴토키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걸 가츠라가 말리다가 타카스기의 국 그릇을 떨어뜨렸다. …즈… 즈라… 네 놈…! 상당히 시장했던 터라 타카스기는 참지 못하고 난전에 끼어들었다. 이를 지켜보는 병사들이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뭐, 뭐야! 왜 웃어!! 낯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셋은 성만 내었다.
“전장 한 가운데에서…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 곳은 재밌는 곳이야.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가츠라의 말에 둘은 가츠라를 한 번 쳐다봤다가 눈을 내리깔고는 아무 말도 않았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들.”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그렇게 흘리며 말하는 가츠라를 보며 타카스기가 눈을 째렸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만 그만. 됐고 닥치고 머리나 굴려.”
부대에 들어온 이후로 셋은 밤마다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스승을 잡아간 자들이 막부라는 건 알지만 막부는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했다. 잡아간 죄인들을 수용하는 시설 또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스승이 있는 근처에서 싸워야 그를 구출해낼 가능성이 컸다. 최소한의 피해로 단기간에 스승을 구해내는 것. 허황된 꿈같이 느껴지는 이 무거운 목적이 그들이 전장으로 나온 이유였다. 당장 전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일인데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의논을 한다라. 차라리 생존력을 높일 검술을 키우는 게 어때? 긴토키에게서 그런 의견이 나왔었으나 가츠라와 타카스기는 고집스럽게 먼저 큰 목표를 세우자고 주장했다. 선생님을 구한다는 걸 대전제로 해두고 넷이서 멀쩡하게 돌아가는 게 목표야. 알겠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타카스기의 눈이 조용히 빛을 발했다. 긴토키는 어련하시겠냐며 꿈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간 울컥하여 타카스기는 소리칠 뻔 했다. 그럼 넌 우리 중에 누군가 죽기라도 할 거란 말이냐? 타카스기는 급하게 그 말을 삼켰다. 어디로 봐도 어린 생각임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온 바람인 것도 사실이었다. 긴토키 역시 그 점을 알았기에 더 토를 달지 않았다.
전장에 들어온 이후로 때때로 긴토키는 어른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여 타카스기와 가츠라는 내심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적응되었으나 처음 타카스기와 가츠라는 부대에 들어오고서 느껴지는 피와 시체의 냄새에 놀랐고 짙은 죽음의 그림자에 기가 죽었다. 숱한 전장을 넘어온 병사들에게서 느껴지는 진한 죽음의 그림자와 삶에 대한 갈망은 어린 그들이 접하기에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 긴토키만이 자유롭게 먼저 그들에게 다가갔다. 미묘한 기운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아둔한 그가 아니었다. 다 아는 것이 분명한데도 긴토키는 두렵거나 꺼려지지 않는 것인지 선뜻 다가갔다. 마치 익숙한 것이라는 냥 긴토키는 전장에 잘 녹아 들었고 누구보다도 빨리 부대의 일부분이 되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가츠라와 타카스기는 조바심이 났다. 금새 적응하는 그에게 시기나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미하고 사소한 경쟁심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혹여나 그 적응력을 발판 삼아 긴토키 홀로 먼저 전투에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피어났기 때문이었다. 애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둘은 암암리에 같은 생각을 하였다. 꼭 첫 출전은 셋이 함께 하고 싶었다. 언제 누군가가 죽을 지도 모르는 전장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밖은 늦은 저녁에서 어느새 어두운 밤이 내려 앉았다. 달이 환한 밤이었지만 초승달인지라 어쩐지 위태롭고 연약한 빛이었다. 셋은 역할 분담을 하기 위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댔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정보였다. 스승이 어디로 끌려 수감되었는지도 모를뿐더러 잡아간 자들이 정확히 막부의 무엇인지도 몰랐다. “타카스기 군은 수용소 쪽 정보를 맡고 즈라 군은 막부의 관료 쪽 정보를 맡아.” “즈라 군 아니다 가츠라 군이다. 긴토키 너는?” “나는 유곽 정보를 맡을 게. 대단하지 않냐? 병사가 되면 가끔 들리는 마을 유곽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이부라기가 그랬어!” “그래 긴토키. 네 놈 머릿속이 똥으로 가득 차 있단 건 알겠다.” “뭐야 치비스케?!” “집중이나 해 넌.”
그 때였다. 막사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야? 이부라기야? 나 아직 간호사편 하나 못 읽었는데.”
“무, 뭣 긴토키!” 가츠라가 얼굴을 붉히며 긴토키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런 건 같이 봐야지 배신자!”
“유부녀 편은 없나?” 그렇게 말하는 가츠라를 보며 타카스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는 저와 가츠라마저 완벽히 부대에 녹아 들었다지만 아무리 봐도 가츠라는 안 좋은 쪽으로 머리가 녹아버렸다.
안 쪽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레 핀 빨간책 이야기와 상관 없이 막사 밖의 인기척은 들어오지도 떠나지도 않았다. 머뭇거리는 건지 무언가를 망설이는 건지 조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 뭐야. 타카스기 네가 나가봐. 제일 가까이 있잖아.”
작게 혀를 차며 타카스기가 몸을 일으켰다. 막사의 입구로 다가갔고 천을 걷어내려는 찰나, 인기척이 사라졌다.
타카스기의 몸이 크게 움찔하며 멈췄다. 긴토키와 가츠라 역시 떠들던 걸 멈췄다. 적막이 감돌았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천막의 위에 매달린 등잔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긴토키가 위를 주시하는 사이 가츠라가 천천히 검 집 하나를 잡아 들었다. 낭패였다. 부대 내라고 할지라도 검은 언제나 소지하고 있어야 했다. 타카스기는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천막의 위와 가츠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츠라는 오로지 타카스기에게 눈을 고정하며 검 집을 던질 준비를 했다.
“하나.”
긴토키가 말했다. 불쌍하고 가련한 나방 하나가 멋도 모르고 등잔의 불을 향해 달려들었다.
“둘.”
타닥타닥 적막한 천막 안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나방이 타 죽어가는 소리뿐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타카스기는 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전신의 신경이 곤두세워졌다고 생각했다. 가츠라의 머리카락 몇 올이 어깨에서 스르르 흘러내렸다. 긴토키가 손을 검 집으로 가져갔다. 긴토키와 가츠라 쪽에 검이 놓여 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타닥타닥. 나방의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이 들렸다.
푸스스. 천막 위에서 모래가 떨어져 내렸다.
“지금이야!!”
긴토키의 소리에 맞춰 가츠라가 힘껏 검 집을 내던졌다. 타카스기는 검 집을 받아 들자마자 몸을 돌려 천막 입구 쪽으로 검 집을 높게 쳐들었다.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적의 칼날이 검 집과 부딪혔다. 생긴 건 꼭 박쥐 같이 생긴 게 머리 뒤에 사자의 갈기 같은 걸 달고 있었다. 천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저희를 죽이려 드는 살기 만빵의 천인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타카스기가 부들부들 떨며 온 힘으로 천인의 힘을 막아내고 있는 사이 검을 빼든 가츠라가 달려들어 휘둘렀다. 날렵하게 생긴 천인은 생긴 것답게 위로 펄쩍 뛰어올라 막사의 기둥에 붙었다. 타카스기가 긴장으로 비명을 지르는 근육을 움직여 검을 빼어 들었고 그 사이 긴토키가 기둥에 붙은 천인에게 검을 휘둘렀다.
천인이 가진 단도에 긴토키의 검이 부딪혔다.
막사의 기둥을 다시 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가츠라가 구석의 짐을 발판 삼아 뛰어올라 공중에서 베었다. 천인은 피하기 위해 기둥에서 떨어졌고 그를 놓칠 새라 긴토키가 천인의 안전한 착지를 방해했다.
착지가 불안정하여 바닥을 구른 천인이 재빨리 태세를 정비하는 사이 타카스기가 달려 들었다.
천인의 위에 올라탄 타카스기가 그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실전은 실로 살을 벼리는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갑작스런 기습이 확실한 공격에 타카스기는 전신이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가츠라도 마찬가지였다. 호흡이 부족하고 머리가 띵한 느낌이었다. 숨 쉬는 걸 잊을 정도로 눈 앞의 적의 살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살기를 세상에서 지워야 했다. 검을 들이댄 목에서 살아있는 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온기와 움직임이 느껴졌다. 타카스기는 갑작스레 눈 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사이에 식은 땀이 흐르는 듯 했다.
“뭐 하는 거야 바카스기!!”
일말의 여념을 깨고 긴토키의 외침이 타카스기의 머리를 울렸다.
순간 눈이 마주친 천인은 희한하게 찢어진 입으로 웃고 있었다. 타카스기의 등 뒤로 천인의 자유로운 팔이 단도를 가지고 있었다.
타카스기가 놀라 당황하는 사이 긴토키가 그를 발로 쳐내며 거리낌없이 천인에게 검을 휘둘렀다. 타카스기는 막사 구석의 짐 사이로 굴러 박혔다. 몇 번 구르던 긴토키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볼이 살짝 긁혀 피가 났다. 천인은 바로 몸을 일으켜 긴토키의 검을 피해 뒤로 빠졌으나 뒤에 있던 가츠라가 그를 제압했다.
“즈라ㅡ!!”
처절하듯 외치는 긴토키의 소리에 가츠라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검을 찍어 내렸다.
분수처럼 솟아오른 피는 금새 가라앉았다. 축축하게 발을 적신 선혈에서 따끈따끈한 온열감이 느껴졌다.
천막 안에는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가츠라는 일그러진 얼굴로 피에 젖은 제 손과 제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카스기도 짐 사이에 박힌 몸을 빼내고는 겨우 힘 없는 상체를 들어올려 앉아있었다.
실제보다도 더 실제 같은 이게, 실전이었다. 한 순간 폭발적으로 육체적 힘을 모두 끌어 쓴 터라 몸이 마비된 것마냥 잘게 떨렸다. 타카스기는 피에 절은 가츠라를 보다가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는 긴토키를 보았다. 긴토키의 옆얼굴에서 작은 생채기를 볼 수 있었다. 나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타카스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순간적인 어리석은 지체로 하마터면 자신뿐만 아니라 죄 없는 긴토키까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긴토키뿐만 아니라 어쩌면 가츠라마저 위험해졌을 지 모를 일이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아무래도 동시 다발적으로 여기뿐만 아니라 습격을 받은 듯했다.
타카스기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주먹을 쥐어봤다. 아무리 센 척을 하고 허세를 부렸지만 실전에서 이렇게 나약하게 굴었다.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고 높이 샀던 자신이었다. 그런 안이한 생각을 깨부수기 위한 취사병 활동이었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었다. 바로 눈 앞에 적이라고는 해도 천인이라고는 해도 다른 숨을 제 손으로 꺼트린다는 생각에 한 순간 눈 앞이 아득해져서 이런 실수를, 아니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피가 흐르는 긴토키의 생채기가 그 증거였다. 이건 명백한 잘못이었다. 타카스기는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셋이 함께 첫 전투에 나간다는 도착선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낙오되어 있었다.
“일단 괜찮지?”
긴토키가 따끔거리는지 얼굴에 난 상처를 살짝 만지며 말했다. 가츠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충격이 남았는지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긴토키가 타카스기를 돌아보고는 얼빠진 듯한 그의 얼굴에 헹, 하고 코웃음 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서 일어나 타카스기.”
타카스기는 일어나기 전에,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자기가 멍청했다고 말할 참이었다. 고개를 들어 긴토키를 보는 순간 타카스기는 머리가 얼어붙었다.
“기…!!!
고개를 드는 순간 보인 건 긴토키의 뒤에서 덮치듯 나타난 천인이었다. 타카스기는 손에 검을 쥐고 있지 않았다. 구를 때 검이 어딘가로 나동그라진 게 분명했다. 멍청했다. 반성하는 척만 한 자신은 천하의 멍청이였다. 기습이란 걸 알았을 때부터 검을 손에서 놓지 말았어야 했다. 저 천인 하나를 끝으로 안심하지 말고 계속 경계태세를 취했어야 했다. 가츠라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알아본 건 자신뿐인데 손에 검이 없다. 이대로 긴토키를 잃을 지도 모른다. 너무 놀라 이름을 다 호명도 못하고 소리가 나오지 않는 저는 천하의 겁쟁이였다.
위험해 긴토키
분명 마음 속으로 내지른 비명인 것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긴토키의 검이 천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대로 검을 바닥으로 내리 꽂자 천인의 몸뚱아리 역시 꿰뚫린 머리를 따라 바닥에 쳐 박혔다. 긴토키는 놀란 기색도 없이 무심한 얼굴로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뒤늦게 가츠라가 괜찮냐며 긴토키를 불렀다. 타카스기는 긴토키가 이미 그 천인을 알고 있었든 늦게 발견했든 간에 그의 감각이 아주 예리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원래도 민감하고 눈치만 빠르던 녀석이었으나 그 감각의 정도가 특출 난 것 이상으로 극도로 예민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또한 적응력이 빠른 녀석이 제 것으로 만든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전장에 들어온 지 저희는 나흘밖에 되지 않았다. 그건, 긴토키는 마치 오랜 시간 전장에 있었던 사람마냥 날카롭고 예리하게 벼려진 칼과 같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큭…!
밖에서 고통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 막사의 입구로 셋의 고개가 돌아가자마자 천인이 뛰쳐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긴토키는 검을 뽑아 천인을 베었다. 천인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칼을 맞고 바닥에 널부러졌다. 예상은 못했어도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 듯, 얕게 베이도록 몸을 틀은 덕에 천인은 아직 살아 있었다. 끝까지 저항할 생각인지 그는 손에 든 단도를 긴토키에게로 날렸다. 긴토키가 검으로 단도를 쳐내고는 다른 단도를 손에 든 천인이, 미처 제대로 손에 잡기도 전에 그를 찔렀다.
또 한가지. 타카스기는 긴토키에게서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그 동태(動態)를 알아차렸다. 당연스러운 것인 마냥 긴토키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이것만큼은 아무리 빨리 적응한다고 해도 단번에 생기는 그런 것이 아니란 걸 확실히 알았다. 긴토키의 검법이 아류라는 건 잘 알았다. 검뿐만 아니라 사각에서 날아오는 녀석의 발차기와 주먹을 피하기 위해 타카스기는 얼마나 고전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류 이전에 긴토키에게는 최소한의 움직임과 어떤 동선이어야 하는지가 눈에 훤히 보이는 듯 그 동태가 깔끔하기 짝이 없었다.
긴토키…
얼굴에 튄 피를 닦고 입에도 들어갔는지 퉤퉤 거리며 뱉는 긴토키를 타카스기는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제가 잘 알고 있는 긴토키가 맞을 텐데 형용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제가 알지 못하는 긴토키의 모습에 타카스기는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그렇게 죽이는 것에 능숙한 거야.
“긴토키…”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심호흡이 거친 타카스기가 입을 열었다. 아직 신경이 살아 덜덜 몸을 떨고 있는 천인의 시체에서 칼을 뽑아 든 긴토키가 저를 호명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츠라가 바닥에 주저 앉은 타카스기에게 일어나라며 부축하다가 타카스기가 움직이지 않자 난감해했다. 타카스기의 옷 위로 피로 인해 손바닥 자국이 나자 가츠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역시 많이 놀랐는지 동공이 확장된 채로 얼굴이 굳어있었다. 위기감과 절박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붉은 피가 그의 잘난 얼굴을 더럽히고 있었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며 피와 섞이는 게 보였다. 타카스기 역시 똑같이 굳은 얼굴이었다. 구르고 먼지가 묻어 더러워진 얼굴로 눈은 동그랗게 뜬 토끼 눈이었다. 처음으로 죽인 토끼눈을 떠올리며 긴토키는 살짝 벌어진 타카스기의 입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만 약간의 의아함도 서려있는 것이 가츠라와 다른 점이었다. 긴토키는 그게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문득 궁금했다.
“너 엄청 익숙하잖아.”
의아함의 발생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긴토키 역시 타카스기와 가츠라와 마찬가지로 눈을 크게 떴다. 아. 긴토키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가 다시 점철되는 걸 느꼈다. 신기한 느낌이었지만 그보다는 눈 앞의 상황이 더 중요했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지나가는 말로 들어서 얼추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저가 어떻게 생활해왔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를 가능성도 컸다. 넋을 놓은 사람마냥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타카스기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타카스기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긴토키였다. 지금 타카스기는 저로 인해 저렇게 놀란 것이란 걸 눈치챘다. 이제는 가츠라까지 네 개의 눈동자가 의문을 품은 채 저를 보고 있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왜 그렇게 익숙하냐는 말을 들은 거였다. 그게 얼마나 이상하고 묘한 느낌인지 긴토키는 처음 알았다. 나에게는 당연한 게 이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갑자기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불행하고 불우하고 비참했던 처지를. 눈 앞의 이들 역시 평범한 화목함을 누리지 못한 이들이었지만 적어도 가족이란 것이 있었고 혈연이란 게 존재했으며 사람들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저는 어떠했던가. 찬 가짓수가 부족해도 따뜻한 밥상과 시원한 물 한잔, 작지만 초라한 집 그리고 같이 밥을 먹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긴토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기억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기억들이 아직도 이성의 저편에서 뭉게뭉게 끼어있었다. 살기 위해 죽여야 했고 죽은 이에게 또 무언가를 빼앗았다. 죽이지 않으면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피를 뿜는 것은 제 쪽이 될 거란 걸 뼈에 사무치도록 잘 알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피를 보았고 피를 흘렸다.
짐승처럼 살았다. 저를 해치려 나타난 이들과 숨이 끊어져가는 시체들에게서 말을 배웠다. 시체를 먹는 악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저를 칭한다는 것만 알았던 시절이었다. 피와 흙이 묻은 주먹밥을 먹기도 했고 살점이 붙어있던 떡을 먹기도 했었다. 맛은 기억 안 나지만 그 걸 먹던 자신을 떠올리면 목 안쪽이 무언가에 막힌 듯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얼마나 세상의 밑바닥을 굴러왔던 삶이었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살아남지 못 했는걸. 살기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이유가 되어 스스로 타당했다고 정당했다고 몇 번이고 되 뇌이던 날들이 있었다. 밤마다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들어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다. 저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찾아온 시체들을 눈앞에 두고 공포와 두려움에 소리 없이 흐느끼며 몇 번이고 사과를 되 뇌였다. 스스로가 옳았다는 최면을 거는 날이 늘어나 점차 진정이 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또 다른 이유로 잠을 자지 못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지도 모르면서 갈 곳 없는 원망과 배신감에 빠져 눈물로 밤새 지새웠다. 누리지 못한 다른 빛나고 밝은 것들의 존재를 알아가고 실제로 접하고 그 안에 스스로를 포함시키면서 어째서 이제서야 누리게 되었는지 이유를 생각하고 찾고 괴로워했다.
쇼요를 만나기 이전의 자신은 죽어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짐승처럼 살았음에도 시체나 다름 없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한 나이도 모르는 채로 평생을, 혹은 결국은 맞아 죽거나 얼어 죽어서 혹은 병에 걸려서, 그렇게 살다가 죽었을 지도 모르는 자신이었다.
왜 익숙한가? 그 땐 이게 어쩔 수 없는 단 하나의 생존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었다.
그 어린 몸으로 성인도 쉬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그렇게 강해질 필요가 없는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낳았다. 왜 강한가? 왜 강해질 수밖에 없었는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은 수많은 적의였다. 나와 다르다. 우리와 다르다. 자신은 달랐다. 나에겐 자연스러운 게 저들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저들에게는 당연한 게 자신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강한 저를 동경하는 동문이 존재하는 한편 기피하고 꺼리는 동문 또한 많았다.
문득 긴토키는 고개를 돌렸다. 걷어 올린 천막 밖에서 소규모 습격으로 인해 부대 전체가 소란스러웠다. 이곳은 전장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부터 있던 곳 또한 전장이었다. 동물에게는 회귀본능이 있다고 쇼요가 그랬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회귀본능이 있어? 사람도 동물에 속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참 희극적이지 않은 가. 웃기는 일이다.
해치운 천인을 끌고 다들 중앙으로 모이는 듯싶었다. 숨이 붙은 천인을 한 명 사로잡은 것 같았다. 질질 끌려가는 천인에게서 두터운 피의 선이 그려졌다. 익숙했다. 낯익고 말고. 그 때는 저 모든 것들이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긴토키는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옷으로 문질렀다.
“…돌아왔을 뿐이야.”
원래의 얼굴로 돌아온 거 치고 지나치게 차분한 눈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긴토키는 제가 처리한 천인 하나를 끌고 막사를 나갔다.
막사에 남겨진 타카스기와 가츠라는 긴토키가 떠난 자리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 가슴은 진작에 진정시켰지만 다른 이유로 여전히 동공을 열고 있었다. 불쾌하고 답답한 감각이 머리를 채웠다. ‘있어.’ 원래도 밥 먹듯 허구한 날 허세만 부리던 긴토키였지만 그 때에는 무언가 확고함이 서려있었다. 그저 오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치부하며 가볍게 여긴 것이 이제 와서 목에 칼을 들이밀듯 무겁게 다가왔다.
긴토키의 과거는 쇼요에게서 들었었다. 다만 말로 전해 듣는 것에는 그만한 한계가 있었고 긴토키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저 묻어두었을 뿐이었다. 긴토키가 저희들을, 쇼요를 만나기 이전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자세히 알 길은 없었지만 쇼요와 긴토키 사이의 무언가 끈끈하고 아스라이 흘러나오는 그 무언가를 느낄 때마다 긴토키가 그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따라 마지않는 지 알 수 있었다. 저희의 존재를 얼마나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알 수 있었다.
무표정한 그 얼굴이 약간의 놀란 감정을 내비치었으나 이내 침착함으로 빛을 바꿨을 때. 일련의 동작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선을 그려내었을 때. 일말의 떨림도 없이 검을 휘둘러 눈 앞의 생명을 끝내버렸을 때. 그런 때조차도 차분한 긴토키였다.
제 말에 놀라 토끼눈을 한 긴토키에, 오히려 말을 건 타카스기가 놀란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끝을 어떻게 끝내야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다가 핀포인트가 다 엇나가서... 이게 뭘까.
뭐긴 뭐야. 내 욕망분출의 산물이지 뭐.
어떻게든 집어넣고 싶어서 망한 문장들. 좀 귀찮아서 변형을 하다 말았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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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찬 가짓수가 부족해도 따뜻한 밥상과 시원한 물 한잔, 작지만 초라한 집 그리고 같이 밥을 먹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긴토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
2. 얼마나 세상의 밑바닥을 굴러왔던 삶이었나.
ㅎ,,, 모르겠다 나도. 썰인 듯 썰이 아닌 썰 같은 너란 글.
쓰다가 맘에 드는 사자성어를 발견하여 제목으로 채택. 마치 이 똥을 위한 사장성어같군(미침
家: 집 가, 여자 고 常: 떳떳할 상/항상 상 茶: 차 다, 차 차 飯: 밥 반
집에서 늘 마시는 차와 밥. 늘 먹는 평소의 식사. 그와 같은 늘 있는 일. =일상사, 당연지사.
한자 공부한 셈 치자.
+원작에 나온 이바라기인지 이바라키인지를 떠올린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비슷한 네이밍. 이부라기가 뭔가 더 귀엽다. 어감이랄지가. 이불+지푸라기 같다.(도른
+어느 순간부터 즈라가 공기가 된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아냐... 아니야 즈라. 난 널 스탠바이 시키진 않았어.